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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광주사태의 숨은 영웅들

조회 수 1588 추천 수 0 2005.06.29 22:34:51




아세아자동차 등 군납업체에서 장갑차 등을 탈취하러 갈 때 시민군이 이용하던 시민군 수송차량들 .

5월 21일 저녁에 이백 명 미만의 계엄군이 이십 만명의 시민군에 밀려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후 5월 27일 새벽에 도청진압작전이 30분간 실시되기 전까지 광주시에는 단 한 명의 계엄군도 없었다. 그러나 폭도들은 폭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계속 주변 도시 경찰서들을 습격하고 주민들을 선동하였으므로 계엄군과의 충돌이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에게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고, 선제 공격을 늘 시민군 편에서 했으며, 희생자가 양편에서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학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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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숨은 영웅들 | 광주사태 역사 자료 2005.06.25

만일 용감한 계엄군이 빨리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언제 광주를 쑥대밭과 잿더미로 만들지 모르는 8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누가 도청에 설치하였는지 밝혀지기 전에 5.18 광주 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급하다. 아마 광주사태 사진을 찍고 영상물을 제작한 조총련계 한민통이 그 폭탄 설치를 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그 폭탄을 당시 광주에 있었으되 광주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이 설치하였다. 그렇다면 십중 팔구 그들은 한민통이었다. 한민통이 일본 기자의 신분으로 미리 광주에 들어와 대기하고 있다가 광주사태 사진을 찍었을 때 그들의 목적은 사실 보도가 아니라, 속이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들이 과연 민주화 운동을 위해 그 어마어마한 폭탄을 도청에 설치하였겠는가?



비록 5월 21일에 20만명의 시민군이 200여명의 계엄군을 광주에서 몰아내었으나, 5월 22일부터 광주시민들 대다수는 수습파 혹은 온건파 편에 섰다. 여기서 수습파 혹은 온건파는 시민의 무장과 폭력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시민들을 말한다. 강경파(혹은 투쟁 지도부)가 계속 유혈 투쟁을 선동하였을 때 광주 시민들은 "저 사람들 빨갱이 아니야?" 하며 이상한 눈초리를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당시 절대 다수였던 온건파의 입장에서도 광주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습파 학생대표는 김창길이었다. 25일 오후 5시경 수습위원 김기홍 변호사가 자기를 만나러 도청에 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폭약이 폭발하면 직경 4㎞이내가 잿더미가 되어 버리므로 이를 지키고 있다며, 3일동안 잠을 못 잔데다가 인원이 부족하여 지키기 어려우며, 언제 폭도들이 들어와 폭발시킬지 모르니 어른들이 함께 지켜달라고 울며 호소하였다.



김창길 외에도 폭약을 관리하는 시민군 몇명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광주시를 대폭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폭약 유출을 막았다. 때로는 막무가내로 폭탄을 빼앗아가려던 시민군 동료들과 싸워야 했다. 며칠째 잠을 못 자면서 다이너마이트 유출을 감시하던 이들은 광주시의 안전을 위해서는 다이너마이트 뇌관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金基錫 전교사 부사령관이 극비리에 이들과 밀통하고 군인 한명을 보내 25일~26일 양일간 도청 지하실의 TNT 뇌관을 모두 제거하게 하였다. 다른 시민군에 발각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것은 광주시를 다이너마이트 폭발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행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계엄군이 도청 지하실의 다이너마이트 뇌관분리작업에 성공한 날이 광주에서 해방구의 마지막 날이었다 (참고로, 해방구는 민주화 운동과 짝을 이루는 명칭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과 짝을 이루는 명칭이다).



김창길 학생은 숨어있는 영웅이었다. 계엄군이 폭탄 뇌관을 제거해 주기 전까지 며칠째 그가 밤을 새우며 폭탄 점화와 폭약 유출을 막았기에 광주시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그는 일본군의 북침을 막은 이순신 장군과 북한군의 남침을 막은 전두환 장군 못지 않은 구국의 영웅이요, 광주시를 지킨 자랑스러운 광주 시민이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광주 시민들은 이 숨은 영웅을 기억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1996년 10월 10일자 광주일보에도 계엄군이 도청 폭탄뇌관을 제거해 준 사건이 보도되어 있으나 김창길 학생의 이름이 빠져 있다. 비록 수습파를 차별해서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신 시민군의 증언을 토대로 광주일보가 보도한 도청 폭탄 사건은 아래와 같다.

: <<5.18 광주항쟁사>> 도청 폭탄뇌관제거79



광주일보 199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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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장한 계엄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시민군들이 광주 인근 지역을 돌며 무기 확보에 나선 결과, 상당수의 무기와 폭약을 확보하게 된다.
당시 도청 시민군의 화력은 기관총.카빈소총.M1소총등 총기류 2천5백 여정, 수만발의 실탄, 다이너마이트등 폭약류. 이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이너마이트.
특히 대한석탄공사의 화순광업소 광부들이 8t트럭 분량의 다이너마이트와 도촉선(콤포지션)을 싣고 光州에 와 전남도청 안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것은 계엄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광주와 인근지역에서 구한 모든 총기와 탄약류은 일단 도청 2층 식당에 모아졌고 그 중 폭약류는 다시 지하실로 옮겨졌다.
이를 관리했던 팀은 폭약류 관리반.
폭약반으로 활약했던 梁홍범씨(당시 20세)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현해보자.
당초 폭약반은 9명으로 시작됐다. 23일 梁씨를 포함한 9명이 처음으로 회의를 열고 위험한 물건이니만큼 철저히 지켜야 하니 원치않는 사람은 폭약반에서 나가라고 하자 2명이 나가고 7명이 남았다.
이후에도 2명이 줄어 항쟁 마지막까지 폭약반에 남은 사람은 모두 5명. 文영동.金영복.梁홍범.朴선재.姜남열씨였고 이중 文영동과 金영복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폭약류량은 약 리어카 2-3대 분량. 폭약반은 도청내의 사람들에게도 접근이 쉽지 않았다.
자그마한 실수로 지하에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 도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인근 지역이 폐허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폭약반은 폭약반출을 철저히 금지했다. 어쩔 수 없이 폭약을 주어야 할 경우에라도 폭약을 박스에 반정도만 채워주었고 그럴때마다 책임자 들을 불러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막무가내로 폭약을 가져가려는 사람들과 싸움을 벌인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서 소위 '계엄군과의 내통'으로 알려진 뇌관제거 사건이 벌 어졌다.
25일 오전 10시께.
폭약관리반 文영동.金영복씨등 3명이 지프를 타고 상무대로 들어갔다. 文씨 등은 당시 전교사에서 金基錫 부사령관을 만나 "우리는 도청에서 폭약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신분을 밝힌 뒤 "폭약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뇌관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이들은 그 증표로 다이너마이트 뇌관 6백-7백개를 가져갔다.
文씨 등은 이날 오후 2시께 도청으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전교사에서 문관이 파견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문관파견을 요청한 文씨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기도 했으나 폭발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뇌관제거를 해야한다는데 폭약반 모두가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이날 밤 9시께 폭약 제거를 위해 문관 1명이 들어왔다. 문관은 사복을 입었었고 몽키스패너 2-3개와 작업도구를 가져왔다.
그 문관은 촛불을 켜고 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신형 수류탄과 이미 조립해 놓았던 다이너마이트의 뇌관 분리작업을 했다. 새벽1시까 지 일을 했으나 폭약이 워낙 많아 그날 밤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
일을 끝내지 못한 문관은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金영복씨의 안내로 도청을 빠져나갔다.
문관은 다음날인 26일 오전 다시 도청에 들어와 폭약반들과 함께 뇌관분리작업을 완전히 끝내고 오후1시께 상무대로 복귀했다.
지하실 폭탄의 뇌관이 제거된 사실이 도청내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폭약관리반이 계엄군과 내통했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으나 폭약 관리반원들은 이에 당당하게 맞섰다.
그들은 지하실에 있던 폭약류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선의에서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들이 폭약류를 사용가능하게 보관했더라면 계엄군 진입 당시 시민군이 이를 사용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럴 경우 光州는 쑥대밭이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뇌관을 제거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 했던 이들의 행동은 계엄군과의 내통이라기 보다는 시민을 위한 충정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梁씨는 "뇌관을 제거해 안전하게 보관한 자신들이 역사의 죄인이라고 는 생각지 않는다"며 "지금도 폭약반이 했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도청 지하실의 폭발물 뇌관 제거는 전교사 金基錫 부사령관과 도청 항쟁지도부와의 교감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金基錫 전교사 부사령관은 96년 7월 15일 5.18 22차 공판에 나와 "전교사 부사령관으로서 광주시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25 일 항쟁지도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폭약반을 소개받았고 이날 오후 폭약반 대표 文영동씨등 3명을 만난 뒤 뇌관제거를 위해 특수요원 파견 에 합의했다"고 증언했다.
또 지난 85년 6월7일 尹誠敏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 출석, 발표한 '光州사태 보고'라는 문건에도 "도청지하실에 모아둔 폭발물의 폭발 방지를 위해 폭약반의 양해아래 특수요원을 투입, 폭발물의 뇌관과 신관을 분리하는데 성공, 광주시의 파괴를 미연에 방지했다"고 밝힘으로써 신군부와 항쟁지도부와의 사전교감설을 확인해주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취해졌던 뇌관제거. 결국은 계엄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계엄군이 재진입하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겠다며 버텨왔던 시민군. 마지막 보루였던 폭약류의 뇌관이 제거되자 도청은 이제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것이나 다름 없 었다.
이제 신군부는 그들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폭약류 뇌관이 제거되자 상무충정작전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특별취재반>



전남대 5.18 연구소 자료인 이 기사의 원 출처는

http://altair.chonnam.ac.kr/%7Ecnu518/data/news/sagun/b/kwangju_961010.htm 입니다.

운영자

2005.06.30 16:31:51
*.242.84.229

진정 우리가 잊고있는것은 제주도 48.4.3입니다. 또한 거창양민 학살.. 언제가 우리가 힘을 가지면 이 말못하는 일들을 반드시 짚고 가야할 일들입니다. [당시 미군에 의해 제주도민의 3분의 1이나 되는 8만명이 학살 당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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